게임=4대 중독?... 정치권·업계 “시대착오” 강경 반발

국내 주요 게임사가 밀집해 있는 판교테크노밸리
국내 주요 게임사가 밀집해 있는 판교테크노밸리

성남시가 '인터넷 게임'을 알코올, 약물, 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으로 분류한 인공지능(AI) 콘텐츠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게임업계와 정치권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단순한 지역 이슈를 넘어 10년 넘게 반복돼 온 정책 왜곡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앞서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이달 16일부터 8월 17일까지 중독 예방을 주제로 한 AI 영상·숏폼·CM송 등을 공모한다고 밝혔다. 해당 공모전 주제에는 '4대 중독(알코올, 약물, 도박, 인터넷 게임) 예방'이 포함됐다. 참여자는 SNS 업로드 시 필수 해시태그로 '인터넷 게임'을 명시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게임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남궁훈 아이즈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게임사들이 밀집한 성남시에서 이런 표현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며 “성남시와의 협력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게임인재단 역시 “게임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이자 산업이며, 중독과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반응이 나왔다. 황희두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장은 “성남시는 국내 게임 매출 60% 이상이 발생하는 중심지”라며 “게임을 중독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거 탄압의 반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정부 차원의 명확한 입장 정리와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혼선이 성남시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4대중독법이 2014년 국회에서 폐기됐지만 보건복지부 산하 중독통합관리센터는 여전히 인터넷 게임을 중독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며 “이 같은 표현이 10년 넘게 반복되면서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게임=중독'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고착화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각 지자체 중독센터 표현 방식은 들쭉날쭉하다. 어떤 곳은 '인터넷', 어떤 곳은 '스마트폰' 또는 '인터넷게임'을 병기하고 있다. 성남시의 경우는 마약보다 먼저 게임을 언급했다.

게임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소장은 “문체부는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반대 입장을 밝혀왔지만, 전국 8곳에서 산하 재단을 통해 운영 중인 게임과몰입 힐링센터가 '진단'과 '치료'를 표방하는 것은 게임을 의료적 개입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게임을 문화예술로 인정했다면 유독 게임에만 진단을 적용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소장은 “사실이 아닌 정보가 반복되면 진실처럼 인식되는 '착각진실효과'가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며 “이번 논란이 정책의 전면 재점검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모전을 주관한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는 WHO에 인터넷 게임 중독이 명시돼 있고 보건복지부 지침을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논란이 확산되자 현재는 해당 공고를 삭제한 것으로 확인된다. 보건복지부에도 대변인실을 통해 관련 입장을 묻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문체부 관계자는 게임을 중독 물질로 보는 움직임에 대해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내용인지,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그 전까지는 성급한 접근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